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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처형과 로마의 기독교 탄압

by 친절한 재민 2023. 9. 3.

사도바울은 여러 번 체포되었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체포는 58년경 예루살렘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고 이방인들을 성전에 들여보낸 혐의로 분노한 군중에게 공격당했습니다. 로마의 군사들이 그를 구해내고, 그가 로마 시민권자라는 것을 밝히자 로마로 이송되었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2년 동안구금되었으며, 그 기간 동안 여러 서신을 썼습니다. 그 후 석방되었으나, 다시 체포되어 67년경 칼로 목을 베여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사도바울을 처형한 황제는 네로입니다. 사도바울은 64년에 로마에서 기독교 박해를 당하면서 순교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황제에게 재판을 받으려고 상소했지만, 네로의 명령으로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네로는 로마의 5대 황제로서 친족 살해 기독교도 탄압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네로는 64년에 로마에서 대화재가 발생했을 때, 자신의 궁전을 확장하기 위해 방화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이에 네로는 화재의 책임을 기독교도들에게 돌리고, 잔인한 방법으로 수많은 기독교도들을 처형했습니다. 네로의 기독교 탄압은 역사상 로마가 기독교를 탄압한 첫 번째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로의 종말은 68년에 일어났습니다. 네로는 군사 반란과 정치적 반대파에 의해 황제의 자리에서 몰려났고, 도망치다가 자살했습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네로가 성경에서 말하는 적그리스도 (Anti-Christ)이며, 신의 분노를 유발하여 대재앙을 가져온다고 믿었습니다.

기독교를 가장 많이 핍박한 황제는 디오클레티아누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303년부터 313년까지 10년 동안 기독교를 탄압하고, 교회와 성물, 성전을 파괴하고, 기독교인의 모임을 불허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에게 유혈의 증거를 요구하고, 많은 순교자들을 낳았습니다. 그의 핍박은 로마 제국에서 일어난 10대 핍박 중 가장 강력하고 잔인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로마의 기독교 10대 핍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네로의 핍박 (64년): 로마 대화재를 기독교인들의 소행으로 몰아, 기독교인들을 불살라고 하거나 사자에게 던지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박해했습니다.
  • 도미티아누스의 핍박 (81~96년): 로마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을 적대시하고, 유대인들과 구별하여 세금을 부과하고, 교회 지도자들을 처형했습니다.
  • 트라야누스의 핍박 (98~117년): 기독교인들에게 공개적으로 황제를 숭배하도록 요구하고, 거부하는 자들은 사형에 처했습니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핍박 (161~180년): 로마 제국의 위기와 전쟁을 기독교인들의 신앙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기독교인들을 책임자로 삼아 박해했습니다.
  • 세프티미우스 세베루스의 핍박 (193~211년): 로마 시민권자들에게 로마 신화의 신들을 숭배하도록 강요하고, 기독교인들을 제외시켰습니다.
  • 막시민루스 트라이크스의 핍박 (235~238년): 교회 지도자들을 목표로 하여 체포하고 처형했습니다.
  • 데시우스의 핍박 (249~251년): 모든 로마 시민들에게 황제를 숭배하는 증명서를 발급하도록 하고, 기독교인들은 이를 거부하여 박해와 고문을 받았습니다.
  • 발레리아누스의 핍박 (253~260년): 데시우스의 핍박을 재개하고, 교회 지도자들을 추방하거나 처형했습니다.
  • 아우렐리아누스의 핍박 (270~275년): 로마 제국의 경제적 위기와 외적 침략을 기독교인들이 야기한 것이라고 비난하고, 기독교인들에게 세금을 가중 부과하고, 교회와 성경을 파괴했습니다.
  • 디오클레티아누스와 갈레리우스의 핍박 (303~313년): 가장 강력하고 잔인한 핍박으로, 기독교 교회와 성물, 성전을 파괴하고, 기독교인의 모임을 불허하고, 유혈의 증거를 요구하여 많은 순교자들을 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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